제목낙화 2화2025-02-10 19:5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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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모두가 잠든 밤, 크레스는 자신의 이오니아 제복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어둠이 짙은 도시가 마치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크레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무턱대고 나오긴 했는데… 해리를 무슨 수로 찾지?"

크레스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해리의 이름을 크게 불러보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고, 크레스는 정처없이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녔다.


몇시간이 지나고, 그는 마침내 조용한 공터를 발견했다. 그의 눈앞에는 하늘하늘한 머리카락과 가히 여리여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체격을 가진 남자가 서있었다. 손을 들어 인사를 전하려던 그때, 크레스는 해리가 단순히 서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의 손은 꼭 쥐어져 있었고, 그의 눈 또한 감겨져 있었다. 크레스는 그의 신비스러운 기운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해리가 숨기는 것, 숨겨야만 하는 것…'

그에게는 베일이 있었다. 쌓여있는 베일을 벗겨내려고 하면 더욱더 두꺼운 베일이 해리의 정신세계를 휘감았다. 크레스는 감히 그 세계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살며시 그도 눈을 감았다. 닿고 싶었다. 여전히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선상에서 크레스는 있는 힘껏 손을 뻗어 허우적댔다. 그 헤엄에 끝이 있기나 할까, 크레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가 눈을 뜨자 앞에는 해리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크레스는 소리를 지르고선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소리가 컸는지 입을 틀어막았다.

살며시 손을 떼고 다시 해리에게 말했다.

"우와 깜짝이야… 놀랐잖아! 갑자기 눈을 뜨고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다니…"

해리는 여전히 의아한 표정으로 크레스의 눈을 쳐다봤다.

"...여긴 어떻게 왔어?"

힘없는 목소리. 크레스는 그 목소리에 자신의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숨기고 있길래 저렇게 남이 없는 곳에서 혼자 슬퍼하는걸까.


"...여긴 어떻게 온거냐고…"

한참을 멍하게 있던 크레스를 깨운건 해리의 피곤한 한마디였다. 크레스는 곧 한밤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입에서 하품이 튀어나왔다.

"으아…그러니까…그냥 여기저기 다 다녀봤어. 그러다가 너라면 사람이 없는 한적한 장소에 있지 않을까 싶어서…"

크레스는 해리의 눈치를 보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멋대로 찾아와서 짜증이 났나?'

그는 속으로 온갖 걱정을 다하며 해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반응 뿐이라도 좋았다. 크레스는 그저 해리가 지금 자신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안심되는 것 뿐이었다. 제대로된 대답은 기대도 하지 않았으리라.


"...정말로?"

오랜 침묵 후 해리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크레스를 당황하게했다. 어떤 형태의 대답인지, 크레스는 뇌에 오작동이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기쁨일까, 아쉬움일까. 안도일까, 불안일까. 해리의 보이지 않는 베일은 그의 말의 의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만들었다. 크레스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채로

"응, 당연하지!"

라며 밝은 티를 냈다. 해리는 몇 초간 멍하니 있더니 피식 웃었다. 해리의 웃음을 눈치챈 크레스는 표정을 살짝 풀고 다시 그를 웃으며 쳐다봤다.

'...눈가가 붉네.'

그는 이 말을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해리의 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크레스는 더이상 캐묻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한가지, 그가 확실하게 물어봐야 했던것은.


"...너…마음이 없는 자의 악령을 가지고 있다는게 사실이야?"

크레스는 해리의 표정을 세심히 살폈다. 당황한 표정이 확연히 드러났다. 베일 하나가 사르륵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리는 곧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서글픈 눈을 하고 있었다. 크레스는 놀라서 해리에게 다가갔다.

"아니…그…그런 표정 짓지마! 의심하는게 아니라 보고서에 나와있어서…"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리는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크레스는 아무 말도 못한채 조용히 해리를 보았다. 베일의 안쪽, 아직도 겹겹이 쌓여있긴 했지만 해리가 조금 더 또렷하게 보였다. 


베일 속의 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무력감이 온몸을 둘렀다. 해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사람은 나를 믿고 있는 걸까. 그는 눈앞에 있는 자신을 찾아와준 친구를 의심하는 이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더 이상은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해리는 크레스에게 살짝 웃어주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으리라. 


"...이젠 괜찮아. 너라면 분명 그 마음으로 여러 일들을 해낼 수 있을 테니까."

크레스는 해리의 의미심장한 말에도 토를 달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우린 다시 못 만나는 거야? 적이 되는 거라고…?"

해리는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크레스는 해리의 힘없는 손을 바라보았다. 흔들리던 손은 곧 내려지고, 해리는 뒤를 돌았다. 크레스는 잡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선 해리의 뒷모습에 미소를 보내주었다.


방으로 돌아와 크레스는 다시 일기장을 펼쳤다. 해리의 기억, 추억, 기쁨, 슬픔. 모든 것이 담겨있는 종이는 해리에게서 멀어졌다. 숨기고 있는게 무엇일까. 크레스는 창밖의 달을 바라보았다.

초승달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네... 오랜만이네용 헤헤헤 재밌게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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