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단.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다섯 살 아이다.
난 어릴 때부터 악과 어둠을 따를 것을 강요받았고, 가족은 없고 날 지배하는 분이 한 명 계실 뿐이었다. 그래서 태어난 게 아닌 만들어진 아이였고,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배운 말은 ‘마하가라 님’이었다. 가장 높은 직급에 있는 마하가라 님의 부하이자 대행자였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부하들에게 반말을 쓸 수 있었지만, 딱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기억이 존재하던 순간부터 마하가라 님은 항상 내 곁에 계셨다. 누구는 먹여살려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안다. 구걸이라도 하면 난 먹고살 수는 있을 거라는 걸.
하지만 다행히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내가 그날 구해준 ’래퍼드’. 연구소에서 쓰던 실험체로, 부장용으로 인해 로봇 갑옷을 벗고 6시간 이상 있으면 안 된다. 게다가 마하가라 님의 명으로 기억을 지우고 세뇌까지 해야 했다. 비록 지금은 많이 나아졌고 세뇌도 약하게 하고 있지만.
그날은 마하가라 님의 명을 처음으로 거역한 날이었다. 첫 임무라 봐주셨지만, 그때 내가 봤던 마하가라 님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날 이후로 난 절대, 절대 마하가라 님의 명을 어기지 않기로 했다. 임무를 깔끔하게 수행하기 위해 항상 완벽에 가까운 계획을 세웠고, 계획이 틀어지면 직접 행동에 나섰다. 그게 내가 목숨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아직도 자유를 꿈꾸지만, 티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생각을 걷어차고 임무에 집중한다. 어차피 이루어지지도 않을 걸 생각하고 있는 건 희망고문이니까. 하지만 난 자유를 얻고 어둠에서 벗어나고 싶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자유인이었다면 손오공의 무리에 붙었을 것이다.
자유…빛…선…
그래, 해보는 거야..!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잖아?
난 지금 이 생각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날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하가라 님의 생신인 5월 5일이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마하가라 님의 생신을 축하드리러 마하가라 님의 처소로 가고 있었다. 생신 축하드린다는 한 마디를 전하려고 래퍼드와 같이 걸었다. 어차피 선물은 안 받으신다는 걸 난 알고 있으니까. 그때 난 길에서 어떤 물건을 봤다.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갔겠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날 끌어들였다. 결국 난 래퍼드에게 “잠깐만.”이라고 말한 뒤 그걸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건 회중시계였다. 낡아서 그런지, 금으로 된 테두리에는 먼지가 많이 쌓여 있었고, 겉유리에는 금이 가있었다. 하지만 가장 특이한 건 시계 그 자체였다. 바늘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시간은 완전히 달랐다. 문득 이런 물건이라면 마하가라 님도 좋아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걸 집어들고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어떤 종이 한 장이 같이 잡힌 건 꿈에도 모른 채. 처소에 도착하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아, 오늘이 오공의 생일이기도 했지. “단, 래퍼드, 들어와라.” 곧이어 거대한 문이 열렸다. 안에는 마하가라 님이 계셨다. 역시 악의 기운이 가득했다. “생신 축하드리옵니다. 이건 선물…” “괜찮다. 네가 가져라.” “네? 네…” 결국 난 그 회중시계를 그대로 가지고 정원으로 갔다. 정원에서 나는 회중시계를 꺼냈다. 종이 한 장이 같이 잡힌 것도 알게 되었다. 종이를 살펴보니 이렇게 써있었다. ‘회중시계 사용법 1. 뒤쪽 버튼을 누른다. 2.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날, 즉 과거를 말한다. 3. 과거에 도착한다.‘
‘이…이게 무슨..!‘ 처음에는 그냥 이상한 애들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마음에 걸리는 과거가 생각났다. 내가 처음으로 능력을 쓰고, 마법진을 만들었던 날. 열세 살이 되던 해였다. 나는 항상 리더 등록을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범법자로 잡혀가면 어쩌나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하지만 마하가라 님은 괜찮다고 하셨다. 자기가 알아서 할 거라고. 나는 속는 셈 치고 회중시계를 쓰기로 했다. 그래, 내가 제대로 된 능력을 처음 쓰게 된 그날로! 나는 회중시계 뒤쪽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외쳤다. “내가 열세 살이 되던 해, 능력을 받은 날로!” 회중시계의 바늘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다가 어느 지점에서 딱 멈췄다. 나는 시계를 바라봤다. 어지럽고 멀미가 났다. 주변 배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주변을 둘러보려고 했지만 눈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난 어느 곳에 도착했다. 어떤 문 앞이었다.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벌써 능력을 주다니요? 아직은 너무 이릅니..!” 쾅. 제대로 도착한 것 같았다. 그날도 난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엿들었지. “단에게 능력을 주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는 자가 더 있나?” “어, 없습니다…” “좋다. 단, 들어와라.” “네, 마하가라 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듣지 않았나? 지금 당장 능력을 주마. 전수!“ 순간 내 몸이 뜨거워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힘이 넘치면서 몸이 가벼워졌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소원이 있는 것 같군. 무엇인가?“ ”…내년에, 리더 등록을 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소리냐! 그건 우리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다. 악의 마법진부터, 너의 개인정보까지. 그들이라면 충분히 우리의 정체를 추리할 수 있겠지. 안 된다.“ ”…제 일곱 번째 생일 날, 소원을 딱 세 개 들어준다고 하셨죠. 그 소원권들 중 하나는 래퍼드를 구할 때 썼고요.“ ”..!“ “마하가라 님의 조각이자 대행자 단, 두 번째 소원권으로 리더 등록을 하겠습니다!” “…내가 너에게 준 것이니 나도 어쩔 수 없군. 좋다, 나의 조각이여. 리더 등록을 하여라. 대신!” 마하가라 님은 잠시 뜸을 들이셨다. “거짓 개인정보로 리더 아카데미에 들어가라. 악의 마법진은 내가 해결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1등급으로 합격해라. 그렇게라도 네 실력을 증명해라.” “명 받들겠습니다.” “그럼 아무 능력이나 써보아라. 나의 조각을 제외한 다른 부하들이여, 환송! 이런 것처럼.“ 그렇게 니토, 로스, 엔비, 그리고 래퍼드는 순식간에 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악령!“ 순식간에 내 손바닥에서 악령이 나오고,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마하가라 님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셨다. ”흡수! 정지!“ 마하가라 님이 능력을 쓰자, 악령은 마하가라 님의 손바닥으로 빨려들어가고, 내가 만든 마법진은 사라지지 않았다. “변화!” 악의 마법진의 색깔과 모양이 바뀌고 있었다. 곧이어 마법진이 화(火)의 마법진으로 바뀌었다. “역시 너에게는 오행의 속성 중 불의 속성이 가장 잘 어울리는군. 제한!” 갑자기 걸린 제한 마법으로 인해 내 능력은 제한되었다. “나의 조각이여, 이제부터는 불의 능력만 쓸 수 있지만 염화의 능력은 쓸 수 없다.” “네.” “그럼 너도 돌아가라! 환송!” 난 다시 내 정원으로 돌아왔다. 과연 내 선택이 내 미래, 아니 이 세상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과거로 온 그날 이후로 1년이 지났다. 오늘이 드디어 리더 등록일이다. 리더 아카데미 앞은 이미 떠들썩했고, 리더 아카데미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도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이면 편지로만 만나던 해리를 실제로 만날 수 있다. 내가 리더 등록일을 오늘로 정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난 이미 해리에게 모든 걸 다 말했다. 과거로 온 것부터 오늘 리더 등록을 할 거라는 것까지. 그래서 오늘 만나자는 것과 내가 화 속성이라는 것, 그리고 이제 형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도. 해리에게는 답장이 안 왔지만, 분명히 잘 알아들었을 것이다. 나는 리더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눈으로 해리부터 찾았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렇게 리더 등록은 시작되었다. “여, 여러분 모두 주목…주목해 주세요.” 음? 분명히 아주 괴팍하고 무서운 감독관이 들어온다고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여러분…이쪽을…”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집중하지 않고 있었다. “주, 주모옥…저기요?” 어린 감독관은 계속해서 말을 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듣지 않았다. “…하.” 감독관의 이마에 있는 보석이 빛났다. 그리고 감독관은 순식간에 괴팍하게 변했다. “집중 안 하냐! 아가들아! 지금부터 떠드는 것들은, 내가 친히 상대해 주지. 나는 리더를 교육하는 교육부 소속이다! 운이 좋아 시험에 합격하면 나를 계속 보게 될 거다. 내 밑에 있는 동안 사고를 치면 벌점, 교육 성적이 나빠도 벌점이니까 각오해! 잘 들어. 1등급은 4명…“ 난 그것까지만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알던 제도와는 다르네. 내년에는 1등급을 1명밖에 안 뽑을 텐데. ”자, 그럼 배정 받은 문으로 들어가 테스트를 받으세요.“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온 감독관이 말했다. 나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러니까 얼마 전부터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할 수 있는 거 해봐.“ 나는 가장 강력한 것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신진화멸! 비전! 비검! 요원지화!” “여기까지. 복구!” 내 능력으로 인해 엉망이 된 방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밖으로 나가면서 그분의 혼잣말을 들었다. “척 보니 1등급이구만.”
다행히 난 1등급으로 붙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숙소와 룸메이트가 공개되는 날이다. 다른 등급은 어떤지 모르지만, 1등급은 1등급끼리 같은 숙소를 쓴다. 해리가 있어야 할텐데…제발..! 룸메이트들을 한번에 보려고 제일 늦게 방에 들어갔다. 문에 귀를 대보니 안에서는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난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갔다. “마지막 사람까지 왔네! 안녕!” “어, 안녕…” 나는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해리를 찾았다. 내 앞에 작은 원형 테이블을 두고 오른쪽에는 해리, 가운데에는 긴 남색 머리카락의 여자가, 왼쪽에는 밝은 표정의 금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한테 인사한 건 왼쪽의 남자였다. “다들 말 놓기로 했어.” “으응…” “그럼 다들 자기소개를 해볼까?” “누구부터지?” “나부터 할게! 나는 열다섯 살 크레스. 이오니아 출신이고, 총리님의 아들이자 푸른 장미의 왕자야! 수장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난 시엔. 크레스랑 동갑이고, 카곤 루후안 가문의 임시가주지. 나 역시 수장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난 해리. 나 역시 열다섯 살이고, 피온스의 수장 자리를 노리는 리더지. 잘 부탁해.“ ”나는 단. 소스시티에서 나고 자랐고, 그래서 수장 같은 건 관심 없어. 그리고 나도 열다섯 살이야.“ 해리가 이상하게 쳐다보긴 했지만, 편지 내용이 생각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첫째 날이 마무리되기 전,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그냥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보니 최근 나에게 일어난 일들은 엄청난 우연이었다. 결말이 뻔한 동화책에나 나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우연. 그런 걸 보면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이야기가 다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다르다. 나는 나고, 우연은 우연이다. 그런 것들은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냥 앞으로 가는 거다. 그래야 진전이 있을 테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리더 아카데미에서의 둘째 날이 밝아왔다. 교육 첫날이라 그런지 다들 들떠 있었다. 나는 챙길 것만 챙겨서 방을 나섰다. 교육실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교육실의 입구가 굳게 닫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첫 교육을 맡은 자방 교관이에요. 시작하기에 앞서 마정석의 역사를 짧게 알아볼게요. 그 옛날,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고…“ 벌써부터 하품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긴,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자방 교관이 말을 이어갈수록 사람들의 집중력은 점점 떨어졌다. “으…하나도 모르겠어.” “어차피 이 내용은 평가에 포함되지 않으니까 대충 흘려들어.” “머리도 아픈데 잘됐다.” 바보 같은 놈들. 이런 건 기본 상식인데. 해리, 시엔, 크레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크레스는 살짝 지루해하는 것 같았지만. “내일부터는 기본적인 훈련에 들어갈 거예요. 몸의 유연성과 신체능력, 그리고 팀원들 간의 협동심을 키우고, 충분히 성장한 후에는 능력을 이용해 토너먼트를 진행할 거예요. 그리고 그 동안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10명의 리더들에게는 삼국을 여행할 기회를 주고요.“ “와아!” “그럼 오늘은 이만 방에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부터는 능력도 조금씩 쓸 예정이니까요. 서고나 훈련장, 카페, 식당은 이용해도 됩니다.” 그렇게 교육실에는 우리 팀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 뭐 할래? 난 훈련장 갈 건데.” “아침 먹자!” “그래, 너 혼자 먹어라. 난 서고 갈 거야. 찾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도 해리를 따라서 서고에 갈 거야.” “나랑 밥 먹을 사람 없어? 단, 훈련하려면 먹어야 되지 않겠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게 일어난 변화에 아주 놀랐다. 내가 ‘우리‘라는 말을 쓰다니. 믿을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래퍼드를 포함한 내 부하들과 나를 지칭할 때 빼고는 ’우리’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 ”단! 같이 가자! 응? 제발!“ ”나 원래 아침 안 먹어.“ ”…알겠어. 그럼 나 간다!“ 크레스는 혼자 식당으로 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해리와 시엔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나는 훈련장으로 걸어갔다. 우리, 우리, 우리… 그래, 뭐 한 번쯤은 써도 되는 거지. 솔직히 ‘우리’ 말고는 표현할 단어가 없을 땐 써도 돼. 나는 달린다.
”오늘은 여러분들의 실력을 확인하는 대련을 실시합니다. 대련은 토너먼트로 진행되고, 이길 때마다 10점을 받아요. 최종 우승자는 가산점으로 200점을 받습니다. 대련에서 이기면 점수도 받고, 실력도 늘고 결과적으로 높은 등급의 리더가 되고…일석이조죠?“ 드디어 그 동안 연습한 걸 보여줄 수 있으려나! 누가 처음일까…그게 제일 중요했다. 처음인 사람은 상대적으로 매우 불리하기 때문이다. “어제 밤에 리더 아카데미 안을 몰래 돌아다니다가 걸린 사람이 있다던데…훈련생 시즈.” “저 녀석, 등급이 꽤 낮던데? 6등급이었나…“ “도전할 사람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누군가 앞으로 나갔다. “시즈, 나랑은 초면이지? 잘 부탁해.“오 “쟤는 2등급 스유잖아? 당연히 쟤가 이기지!“ “하지만…시즈는 토(土)의 성질을, 스유는 수(水)의 성질을 가진 리더인걸..? 둘이 막상막하일 것 같은데? 처음부터 엄청난 대결이 펼쳐지겠네.” “암석!” “수막!” “융기! 도약!” 시즈가 돌 기둥을 밟고 뛰었다. “홍수!” “사풍!” “수포! 하앗!” 스유가 능력을 쓴 후, 바로 기합을 넣은 것과 동시에 시즈의 얼굴 앞으로 주먹이 날라왔다. “으악!” “훈련생 스유가 승리했습니다. 훈련생 스유에게 도전할 훈련생 있나요?” 그렇게 그런 식으로 대련이 진행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나와 해리, 시엔이었다. 사람이 얼마 안 남은 관중석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3명이 남았으니 삼파전으로 진행됩니다. 각자 위치에서 준비해주세요.” 우리는 정확한 거리를 두고 섰다. 솔직히 말해서 이길 생각은 없었다. 시엔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시엔은 능력도 좋긴 하지만, 주로 검술을 썼다. 하지만 지금은 검을 쓸 수 없었다. “자, 그럼 시작!” 다들 눈치만 봤다. 선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먼저 공격하기로 다짐했다. 기를 끌여올렸다.
내가 기를 다 끌여올렸을 때, 해리가 선수를 쳤다. “수집!” 나는 모은 에너지를 반사 마법에 썼다. “반사!” 난 해리와 시엔이 먼저 싸운 후, 한 명이 패하고 한 명이 지쳐있을 때 공격하기로 했다. ”부양.” 해리와 시엔이 싸우기 시작했다. 해리는 다시 선공을 했다. “수집.” “아악! 힘이…! 다리…강화!” 시엔은 순식간에 해리에게 달려가더니 바로 공격했다. “화탄(火彈)!” “이동.” 시엔의 공격을 가볍게 피한 해리는 내 옆으로 이동했다. 난 놀라서 급하게 능력을 썼다. “화풍!” 뜨거운 불바람이 곁에 있는 해리와 아래에 있는 시엔을 덮쳤다. 나는 그 바람 속에서 한 개의 목소리를 들었다. “차단!” 해리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시엔은…? “훈련생 시엔, 탈락입니다. 결과는 3등입니다.” 결국 1대 1이 되었다. 시엔을 너무 쉽게 이긴 탓에 해리는 지치기는커녕, 아직 쌩쌩했다. …근데 솔직히 말해서 이길 생각은 없다. 그러니까 난 져도 상관은 없다. 해리와 내가 동시에 능력을 썼다. “수집!“ ”화권!“ 마법 주먹에 들어있는 내 에너지가 해리의 마법에 의해 흡수되었다. ”윽!“ 난 대련장 바닥에 쓰러졌다. 3초 안에 못 일어나면 탈락이다. 난 남은 에너지를 최후의 공격에 쓰기로 했다. ”…부양!“ ”뭘 하려고 또 올라가는 거야?“ ”무간지옥!“ ”수집…큭!“ 이번에는 해리가 쓰러졌다. 그리고…일어나지 못했다. “훈련생 단이 승리했습니다. 많이 다쳤죠? 치유!” 그렇게 대련이 끝났다.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이야기나 좀 나누기로 했다. 물론 난 집중하지 않았지만. 이대로만 가면 난 최우수 리더 10인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삼국을 여행할 수 있고, 그 여행을 기회 삼아 탈출할 수 있다. 물론 래퍼드를 데리고. “아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7등이 뭐야, 7등이.” “거짓말. 아까 거의 쓰러지던데.” “그래도 럭키 세븐이잖아. 기분은 좋지 않아?” “기분은 무슨! 넌 2등 했으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라고!“ ”근데 단, 너는?” 나는 생각에 잠겨서 그 말을 못 들었다. “단?” “응? 왜?” “무슨 생각을 하길래 내 말을 못 들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서 왜?” “1등 한 기분이 어때?” “음…글쎄. 잘 모르겠는데.” “뭐어? 난 1등을 하려고 진짜 열심히 했는데!” “아마 다른 리더들도 그 정도로 간절하게 1등을 하고 싶었을걸?” “난 딱히 이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 그래도 대충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열심히 한 거라고.” “진짜? 너 되게 강하다!” 강하다고? 능력이 제한됐는데도 이 정도 실력으로 칭찬을 받으면 마하가라 님께 도전할 만하다. 게다가 래퍼드까지 있으니 무서울 게 없다. “그럼 우리 다 같이 밥부터 먹고 올까?” “좋아! 마침 대련 때문에 힘들었던 참인데.” 식당은 이미 훈련생들로 가득 차있었다. 다들 먹고 떠드느라 바빠 보였다. 우리는 얼른 배식을 받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크레스는 소세지만 산처럼 쌓아서 왔다. 우린 그걸 보고 웃었다. “야, 야! 야!”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난 뒤를 돌아봤다. “응? 누구…?” “아, 나 스유. 아까 봤지?” “소문난 영재이며 맨 처음에 시즈를 이긴 2등급 훈련생. 수(水) 속성 맞지?“ ”응.“ ”그래서 날 부른 이유가 뭔데?“ 스유는 시엔, 해리, 크레스를 힐끔 쳐다보더니 나에게 말했다. “둘만의 개인적인 얘기라서.” ”어…얘들아, 난 먼저 가볼게.“ ”그래, 스유랑 얘기 좀 하다 와.“ 나와 스유는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서 용건이 뭔데?” “확인하고 싶은 게…있어서 말이야. 너…마하가라의 부하ㅈ…” “아니! 그게 누군지도 몰라!” 급한 마음에 나는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냅다 소리를 질러 버렸다. “쉿! 맞구나.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지.” “허. 어이없네.” “뭐, 네가 마하가라의 부하인 건 진즉에 알고 있었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야.” “그럼 뭔데?” “네가 마하가라를 배신하고 영원히 도망치는 것. 그거,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 스유가 씨익 웃어 보였다. 배신이라는 단어와 그 웃음이 너무나도 싫었지만, 스유답지 않았지만, 나는 솔깃한 제안에 귀를 기울였다. “오~관심이 있는 거야? 그럼 내가 계획을 말해줄게. 뭐, 네 계획이랑 겹칠 수도 있지만.“ 스유는 뜸을 들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소스시티 법 정도는 너도 알겠지? 소스시티 법에는 소스시티 국민은 독립해서 살아갈 자유가 있다고 나와 있어. 또, 죄를 지어 법으로 인해 구속된 자가 아닌 이상 다른 존재에게 구속되어 살아가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조항도 있지. 내가 소송을 걸어줄게. 어때?“ ”완전 최악이야. 넌 나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어. 뭐, 알려줄까? 내 비밀? 궁금해 보이는 표정이네. 근데 이걸 어쩌나, 난 이제 곧 훈련이나 하러 가야 겠는데?“ ”…알려줘. 비밀 보장은 확실히 되니까.“ ”나, 출생신고 안 했어. 그래서 법 보호 못 받아.” “그건 마하거라가 법을 어긴 거잖아!” “어차피 재판에서 내가 이긴다고 해도 마하가라는 날 끝까지 쫓아오거나, 아예 죽여버리거나, 아니면…” “아니면 뭐?” 때마침 손목 시계에서 알림이 울렸다. 훈련 시간이었다. 난 말없이 식당을 나왔다.
그 ‘아니면’ 다음에 나올 말은 그 누구에게도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니면…나의 배신도 마하가라의 계획의 일부일 수도 있지. 솔직히 마하가라는 인간도 아니고, 마하가라의 심리를 파악하는 건 능력을 쓰지 않는 이상 정말 어려운 일이다. 모 아니면 도다. 오늘은 드디어 최우수 리더 10인을 뽑는 날이다. 여기서 뽑히면 그만이다. 이게…내 마지막 기회다. “자, 오늘이 바로 최우수 리더 10인을 뽑는 날이죠? 다들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럼 10위부터 발표하겠습니다! 10위는…“ 지루하다. 10위 따위는 관심 없는데. 어느새 내 목적은 최우수 리더가 되는 것에서 1위 리더가 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럼 이제 5위를 발표하겠습니다! 5위는 1등급의 훈련생 크레스! 4위는 1등급의 훈련생 시엔이 차지했습니다. 3위는 2등급의 훈련생 스유, 그리고 2위는…1등급의 훈련생 해리! 대망의 1위는 1등급의 훈련생 단이 차지했습니다. 모두들 축하드립니다.“ 어? 나이스. 됐다. 됐다! 발표식이 끝나고, 최우수 리더 10인은 한 방에 모여 축하 파티를 열었다. 다들 잔뜩 들떠 있었다. “단.” 나를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봤다. 스유가 서 있었다. “또 뭔데.” “궁금하면 따라오던가.” 스유를 따라 도착한 곳은 휴게실이었다. 나는 소파에 걸터 앉았다. “단. 마하가라에게서 탈출하려는 네 계획, 실패야.”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네 마음대로 단정 짓지 마, 스유.” “스유라니? 난 마하가라인데?” “재미 없어, 스유.” “…난 재밌는데?” 순간 스유가 마하가라로 변했다. 진짜 마하가라였다. “마, 마하가라 님…?” “감시는 철저하게 해야 하지 않겠나?“ ”…마하가라 님.“ ”응?“ ”세 번째 소원권으로 마하가라 님을 떠나겠습니다!“ ”…! 뭐?“ ”불가능하지는 않으니, 가능한 것 아닙니까?“ ”넌 날 떠날 수 없다. 어차피 넌 내게 묶여 있다!“ ”그걸 풀면 되잖습니까?“ “아니, 넌 내 부하다, 단!” “하지만 소원권의 소원은 무조건 들어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좋다. 그럼, 풀어주마. 대신! 그 후는 너의 몫이다. 알겠냐?” “네.” “그럼 난 이만.” 마하가라가 무슨 짓을 벌이려고 이러는 건지는 모르지만, 그런 생각은 내 머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마하가라 님, 아니 마하가라는 내 속박을 풀어준 후, 스유로 변신해 휴게실을 나갔다. 나는 탈출했다는 기쁨에 휩싸여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 머리는 돌아가고 있었다. 마하가라는 어둠이자 악, 그 자체다. 그렇다면 자신의 1급 부하를 이렇게 풀어주지는 않을 거다. 그렇다면 설마…? 이럴 수가. 난 마하가라의 계략에 걸렸다. …근데 뭐 그렇다고 해서 문제 되는 거라도 있나? 나만 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 나만 살면 돼! 나는 최우수 리더 10인, 아니 내 친구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스유로 변신한 마하가라는 없었다. 애들은 내가 나갔다 온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애들에게 조심히 물었다. “스유는?” “스유? 아까 자기는 기권할 거라면서 나가던데?” “진짜?” “응, 그래서 리더 한 명 더 뽑는대.” 그때, 누군가 방으로 들어왔다. “얘들아, 안녕?” “어? 시즈다!” “응, 나 최우수 리더로 뽑혔어!” “오, 그럼 놀자!” “응!” …이게…정상인가? 원래 신입이 들어오면 꼰대 짓부터 하는 것, 내가 안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는 것. 그게 내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야! 넌 안 놀아?” “응? 나?” “그래 단, 너! 빨리 와! 안 그러면 안 껴준다!” “…으, 응!” 이게 바로 지금부터 시작할 나의 새로운 삶이다.
오늘은 최우수 리더들의 대련 날이자 축제 날이다. 원래라면 내 머리는 이런 날에 임무를 수행해야 성공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살라멘더에 올라탄 우리는 지금 한 방에서 다 같이 놀고 있다. 곧 있으면 대련이 시작될 것이다. 근데…무언가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거슬린다. 마음이 아프다. 뭐지, 이 허전함은… 그래, 친구. 친구가 없구나. 친구…래퍼드! 래퍼드를 두고 왔다. 그래도 세뇌를 풀었으니 알아서 잘 살겠지…? 한창 걱정으로 가득 찬 내 머리에 희미한 목소리가 들린다. “단! 단! 이제 곧 나가야 해! 단!“ 정신을 차려보니 다들 나를 부르고 있다. 그래, 쓸데없는 걱정은 나만 해할 뿐이야. 이제부터 다 잊고 살면 돼. ”응, 가!“ 나는 달려간다. 기쁨의 눈물이든, 슬픔의 눈물이든, 펑펑 울 여유 따위는 없다. 지금부터 내 삶은 다른 이유로 아주 바빠질 테니까. 마지막 대련인 나와 해리의 대련이 시작하고, 나는 공격을 퍼붓는다. 대련이라는 건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한 법. 어쩌면 인생이란 것도, 나의 대련 한 판과 똑같지 않을까. 내 이름은 단. 내 뜻, 내 의지대로 살아가는 자유인이다.
이건 올리고 가야 될 것 같아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