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연성글] 고백할께요2025-12-14 12: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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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아-
시엔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옥상에 앉아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덜덜 떨면서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했다.

사실 시엔이 멍한 이유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예전부터 시엔은 무의식적으로 해리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무의식적인 호감을 오늘이 되어서야 의식하게 된 것이다.

'동료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니...'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적어도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생각한 사랑이라는 것을 자각하니 충격이 컸다.





처음으로 시엔이 해리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았던 건 크레스 때문이였다.
오늘 아침, 크레스가 시엔에게 "해리랑 연애는 잘 되가냐?" 라며 장난을 쳤고, 시엔은 "제 정신이냐" 라며 대꾸했다.
하지만 크레스는 화들짝 놀라며 "사귀는게 아니었냐?" 라며 물었고, 다른 모든 직원들 또한 시엔과 해리가 사귀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사귀는 줄 알았던 이유가 해리 때문이 아닌,
'시엔이 해리를 멍하니 쳐다본다.' 라던가 '시엔이 해리를 보고 웃는다.' 라는 이유였다.

곰곰히 생각하며 아니라고 대꾸하려 했지만,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니 무의식적으로 쳐다보고, 웃었던 일이 사실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지금 시엔은 점심시간 해리를 힐끔힐끔 쳐다보다가, "잘생겼다..." 라고 작게 읆조리고는 화들짝 놀라 옥상으로 뛰어올라간 것이다.
붉게 상기된 얼굴이 찬 바람을 맞으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됐지만, 그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얼굴은 속수무책으로 다시 붉게 변했다.

시엔은 고개를 푹 떨군 채 가만히 있기다가도 "으아아아!" 소리도 지르고, 옥상 바닥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시엔은 황급히 제 책상으로 돌아왔고, 해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모니터만을 바라보며 업무에 열중했다.
하지만 이런 시엔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오늘 저녁은 제가 다 쏩니다! 치킨, 소고기, 돼지고기 마음껏 고르세요!"
크레스는 정말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었다.
시엔은 크레스의 회식 선언 때문에 해리를 더 오랫동안 봐야한다는 사실에 좌절감이 컸다.
게다가 주로 회식할 때는 크레스, 시엔, 해리 3명이서 놀기에 시엔이 해리를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이쿠 저는 빠질게요~"
해리가 손을 들고 크레스를 향해 말했다.
"어어? 뭐라고?"
크레스는 갑작스런 해리의 말에 잠시 멍하다가, 해리를 향해 몽둥이를 들고 쫓아가기 시작했다.
해리는 어느 정도 도망가다가 멈춰서 몽둥이에 맞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크레스의 유쾌한 행동에 해리의 폭탄 발언으로 싸늘해진 분위기는 다시 웃음으로 가득해졌다.





시엔은 회식에 끌고 가려는 크레스를 겨우겨우 떼어내고, 퇴근하게 되었다.
아카데미의 대부분이 크레스를 따라 식당으로 갔기에 해리와 시엔은 단둘이 남아 짐을 챙겼다.
해리와 시엔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고, 퇴근길이 같기에 먼저 짐을 싼 해리가 시엔을 기다렸다.

해리와 시엔은 서로 어색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눈도 안 마주치고, 거리는 한 0.5~1m 정도 차이나게 걸어 멀리서 보면 서로 모르는 사람 같았다.

이윽고 시엔의 숙소가 가까워지자, 시엔은 해리보다 한두걸음 앞장서 걸어갔다.
하지만, 시엔은 숙소에 먼저 도착하고 해리를 기다렸다.
시엔은 자신이 해리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난 후, 해리와 누구보다도 떨어지고 싶었지만 누구보다도 해리와 가까이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시엔은 용기를 내서 뜻을 전하려 마음 먹었다.

시엔은 해리가 도착하고 난 뒤,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땠다.
"나... 너를 하..... 그니까..."





"나는 너 좋아해."





시엔은 놀라 고개를 홱 들었다.
방금 전 고백은 시엔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였다.
시엔은 멍하니 얼 빠진 표정으로 해리를 바라보았다.
해리는 붉게 물든 얼굴로 시엔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한 번 더 먼저 입을 떼어 말했다.





"나는 너 좋아해. 친구 이상의 의미로."
"나도 너를 좋아해. 친구 이상의 의미로."
#푸른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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