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사랑했던 우리를(1)-너에게 취해서]와 연결된 게 아님. 더 나올 글들도 다 단편임. ※이번화는 스킨쉽은 없음.
벌써 몇일이나 됐더라. 한달 정도 됐나?
그날은 진짜로 나와줬다. 분명 바빠서 내 부탁을 들어 주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내 부탁을 들어줄 시간조차 없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약속했던 카페로 약속했던 시간에 왔다. 그가 오자마자 한말은 '무슨 일이야? 나 빨리 가야되.' 였다. 막상 그렇게 말하니 섭섭하네. 물론 바쁜 건 알지만 나는 그를 오랫동안 이곳에 잡아두고 싶었다.
"...좋아해요."
그는 나의 말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당황한다. 좋아했는지 하나도 몰랐나 보네. 티가 팍팍나지 않았나? 내 마음이 들킬 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괜한 걱정이였나?
"나, 날? 너가?" "네."
그는 잠시 멈춘다. 어떤 말을 해야할지 고르는 듯하다. 나는 그저 초조하게 그의 답을 기다린다.
그래서 그날 갑작스럽게 한 고백에 어떤 답이 돌아왔냐고? 그는 생각해본다고 답했다. 그리고 언제까지 생각만 계속 하는지 지금까지도 아무런 답도 없다.
고백한 바로 다음날에는 어색해 죽는 줄 알았다. 서로 말 몇마디도 못 나눴던 게 그와 처음 만났던 날과 비슷했다. 어색한 건 그날 뿐이였다. 그 이후로부터 그는 나를 원래대로 대했다. 진짜 아무렇지 않아 보였고 그를 의식하며 신경쓰는 건 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혹시 내가 한 고백을 까먹은 건가. 아니면 답하기 싫어서 회피한 건가. 아니면 그냥 내가 싫은데 말로 하긴 좀 그래서 아무말도 안 하는 건가. 이런 저런 이유를 생각해봐도 딱 떨어져 나오는 답은 없었다.
답을 아예 안 주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싫든 좋든 답은 해줘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은데, 그를 아무리 기다려도 '고백' 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접 물어보기도, 톡으로 물어보기도 좀 그랬다. 그렇다고 계속 기다리기만 하기도, 계속 참아야 하기도 좀 그랬다. 진짜 어떻게 해야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고민하는데 그는 진짜 그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아무말도 못 들었다는 듯 그날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아무런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오늘은 야근이였다. 6시에 퇴근하던 시간이 아니라 8시 30분에 퇴근하게 되는 매주 금요일.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오늘따라 더욱 피곤했다. 그한테만 너무 신경써서 그랬나. 일이나 더 신경쓸걸 그랬나. 이런 생각들이 든다.
그때 누군가가 내 책상에 커피 한잔을 올려다 놓았다. 스타벅스 로고가 그려져 있는 커피. 올려다 보니 그였다.
"피곤하면 쉬엄쉬엄해." ".....아, 네."
퇴근하는 그가 말을 걸자 깜짝 놀랐다. 피곤한 줄 알았으면 퇴근이나 시켜주지. 그는 처음 봤을때나 지금이나 같았다. 차갑고 까칠하게 굴다가도 은근히 걱정해주고 챙겨주는, 흔히 말하는 츤데레였다.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언제나 나의 상사이자 파트너였다. 그는 언제나 나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였다.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나는 언제나 그를 사랑했다. 그는 변함없었다. 내게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대해줬고 언제나 같은 모습만 보여줬다.
일이나 끝내고 집이나 가야하는데 그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평소에는 안 이랬는데 고백을 하고 나서 답을 안 주니 계속 신경 쓰게 된다. 아닌가, 그냥 핑계인가.
가까스로 생각을 접고 일에 열중했다. 금같은 금요일에 매주 야근이라니. 정말이지 그는 한결같았다.
빠르게 일을 끝내고 서류를 그의 자리에 올려두었다. 뭐, 알아서 보겠지. 처음에는 어색했던 야근에, 어색했던 업무에 걱정됐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거 보면 사람은 적응이 참 빠르다 싶었다. 집으로 가려는데 그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너, 일 끝나고 시간되면 9시까지 카페로 나와. 9시까지만 기다릴게. 너가 고백했던 그 카페로.]
뭐지? 그의 문자에 순간 당황했다. 내 고백을 잊은게 아니였구나 하고 안심이 되다가도 어떤 답을 듣게 될지 불안하기도 했다.
지금은 8시 55분. 평소보다 25분이나 늦게 나왔다. 그 정도 농땡이를, 아니 그에 대해 생각하고 있긴 했었지만 너무 늦긴 했다. 그 카페까지 가는데는 걸어서 7분정도의 거리. 그는 시간약속을 철저히 지킨다. 내가 그를 봐본 한 한번도 안 지킨 적이 없었고 칼 같이 끊었다. 지금 출발하면 2분 정도 늦을 것 같은데..
택시를 잡기도 애매한 거리. 나는 빠르게 그 카페로 달렸다. 구두 때문에 뛰기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뭔가 이번이 아니면 그의 대답을 영원히 들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만이 들었다.
카페에 도착했을때는 9시 1분. 카페 안을 둘러봤지만... 그는 없었다. 1분이라는 시간도 못 기다려준 건가....? 아니 기다려야 하는 대상은 나였다. 난 그의 대답을 기다려야 한다. 근데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들을 수 있지?
그저 멍하니 카페에서 나왔다. 내가 조금만 일찍 왔다면, 아니 조금만 일찍 문자를 봤다면 그를 만날 수 있었을까. 문자를 보내봤지만 그는 보지 못했다. 보지 않은 건가 싶기도 하고.
집으로 가는데 뛰는 중에 삐었는지 발목이 욱신거렸다. 앗 따가워.. 살짝 터치했는데도 아팠다. 발목이 부운게 느껴진다. 택시 타고 갈걸. 괜히 돈 덜 쓰겠다고 버스를 타고 왔다.
힘들게 도착한 집 앞에는 그가 서있었다. 순간 놀라 뒷걸음질을 치자 그는 날 보며 이야기한다.
"9시까지 카페에 안 오길레 집으로 찾아 왔어. 혹시나 집에 왔을까 해서. 근데 많이 늦었네?" "....카페에 갔었어요. 1분 정도 늦었을 뿐이였다고요. 팀장님이 1분도 못 기다려주신 겁니다." "그랬나? 미안."
괜히 퉁명스럽게 한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두근두근. 진짜 가버려서 왠지 미웠는데 그의 웃음을 보니 다 풀려버린 느낌. 나 진짜 어떡하냐.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가봐.
"그래서 왜요? 왜 불렀는데요." "아, 그게.. 그..."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때고 말한다.
"내가 좀 생각해봤는데.. 음..."
그는 얼굴을 붉힌다. 나는 모르겠어도 그의 저런 모습은 처음인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한다고." "네....?" "나도.. 좋아한다고."
아마도 오늘 이 밤은 잠들지 못할 밤이 될거다. 나도, 그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