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은 온화하게 땅을 비춘다. 그 온기 속에서 아이들은 뛰놀며 웃는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과 놀며 청년들은 연인과, 친구들과 함께 한다. 평화롭고도 즐거운, 판케니아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원래 이랬어야 했는데. 모든게 부서졌다.
좀비로 뒤덮힌 세상. 모든 것의 재앙이 되버렸다. 크리스마스인 오늘도 모두가 숨죽인다. 웃음 소리만 들렸어야 했는데. 작은 웃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웃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라니. 정말이지 신기하다. .....'절망적이다' 라는 말이 더 맞으려나.
"정말... 끔찍해."
모두가 같은 생각이였다.
소리없는 크리스마스. 웃음없는 크리스마스. 기쁨없는 크리스마스.... 이게 맞는 걸까. 알 수 없는 기분만이 느껴진다.
우리는 우리끼리 크리스마스를 즐겨보기로 한다. 비록 초라한 편의점 옥상이지만, 우리에게는 좋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 . . 난 나 혼자만의 크리스마스를 즐기기로 했다. 다른 생존자들과 있어도 좋겠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뿐이였다.
언니, 이런 세상이 왔어. 소리없는 크리스마스라니. 대박이지? 언니는 생각하지도 못했을거야.
....차라리 생각하지도 못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럼 언니를 떠올릴 일도 없었을텐데. 차라리 이런 일이 없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럼 숨죽여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을텐데. 이미 모든게 망가졌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이라는 게 이런 걸까.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진 기분이다. 좀비 사태, 과연 끝나긴 할까. 우리가 이렇게 마음 놓고 있어도 되는 걸까. 준비해야되는 거 아닐까.
다른 생존자들은 편의점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꾸민다고 조심히 이곳저곳 다녀온다. 조촐하지만 나름 잘 꾸며진, 약간의 멋을 낸 크리스마스 파티가 준비됐다. 난 딱히 즐길 생각은 없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긴하다. 그냥 넘기지, 왜 하는 거지. 크리스마스를 꼭 즐겨야만 했나. 이럴 때일수록 식량이나 더 얻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다른 생존자들은 이 상황에서도 즐거워보인다. 그래, 그거면 됐다. 언젠가 이런 악몽도 사라지겠지... 작게 읊조렸다.
"언니, 메리 크리스마스." . . . '우와~ 예쁘다! 빨강 초록 빨강 초록.. 엄마, 왜 이렇게 꾸며?' '아~ 크리스마스라서 그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그게 뭔데?' '재밌게 즐기는 날. 신나게 노는 날이야.'
사막에서 산 나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있었다. 어느 크리스마스든 언제나 밝았다. 겨울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로 꾸몄다. ....즐거웠었는데. 그건 과거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재밌게 즐기려고 여기저기 꾸미긴 했지만... 아쉬운 건 매한가지였다. 내가 알던 크리스마스, 그게 아니였으니까.
솔직히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바라는 게 어처구니 없긴하다. 좀비 사태인데 즐겁게 보낼 수 있을리가... 그래도 내심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이럴 때보면 유치한게 나도 애같다니까.
엄마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까. 아니면 지금이 더 좋을까. 적어도 오늘만큼은 엄마가 보고 싶다. 항상 꾸며졌던, 하지만 낡았던 우리집이 어느샌가 그립다. 비록 그곳에서 산 날도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상행단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도 즐거웠었지. 두번째 회상이다.
그만 생각하고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뭐 어쩌겠어. 이미 벌어진 일들인데. 그래도 크리스마스를 사람들과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니까, 그냥 즐기기로 했다. . . . 내 기억 속에 사람들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가 있던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였다. 그저 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내 저주받은 모습이 나타날까봐, 그래서 아버지가 날 더 싫어할까봐.
하지만 이제는 딱히 아버지 눈치 보고 싶지도 않고 지금 곁에 아버지도 없다. 오늘이야 말로 숨죽여야 하지만, 처음으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다.
생존자들과 작게 이야기하면서 즐기는 크리스마스가 즐거울 줄은 몰랐다. 좀비 사태인데도 이런 분위기로 할 수 있다니. 어쩌면 지금이 좀비 사태 전 크리스마스를 보낼때보다 더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잘 계시겠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좀비 사태 발생 이후 아버지의 소식, 우리 가족의 소식을 못 들었다. 내 가족들은 날 생각하기나 할까. 어쩌면 날 더이상 보지 않아도 되니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만약에 좀비 사태가 끝난다면.. 이들과 함께 진짜로 파티를 여는 게 어떨까. 분명 크리스마스에 즐겁게... 보낼 수 있겠지. 벌써라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
크리스마스, 딱히 중요하다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가족들과 쉬는 날일 뿐이니까. 왜 좋아하는 건지도 이해가 안 됐지만 오늘은 이해가 됐다. 크리스마스는 그게 좋다. 모두가 함께여서, 모두가 즐거워서. . . . 좀비들의 세상에서도 즐거움은 남아있다. 적어도 그들이 있는 곳에서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었겠지.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