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나는 42권 이후의 스토리에서 개연성을 느낄 수 없었다...2021-01-29 16: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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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나무위키는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42권 이후로 어디에서 개연성을 느낄 수 있었는가?


여의필이 108요괴 뿌린 암흑 구하면서 옥황을 욕했을 때?

샤오가 천세가 2대 검은 마왕이 되는 꿈을 꾸면서 비명을 지르며 어린애처럼 울어버렸을 때?

암흑이 자기가 마왕으로 만든 온화자비가 성불하는거 보면서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을 때?

오공이 대가리통이 고장난 것처럼 암흑을 삼장이라 부르며 계속 쫄랑쫄랑 따라다니기만 했었을 때?

소여신이 관 뚜껑을 열자 텅 빈 관이었고 사실 대지의 페이크였을 때?


나는 위의 것들에게서 어떤 개연성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이상한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이상한 것인가?


"빛과 어둠의 공존을 거부한 선의 아집"


옥황의 캐릭터성 붕괴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분명 41권까지만 해도 아들 잃고 복수로 불타는 할아버지였는데, 사실 빛의 세상에 망집났던 노친네가 되었다.

너무 캐릭터성 반전이 크다보니 광명계로 넘어오면서 정신 세뇌당한건가 싶었을 정도였다.

즉 기존의 옥황의 캐릭터성을 무시당했던거다.


확실히 착한 어둠과 나쁜 빛은 듣기에는 나름 개연성도 있어보이고 주제도 더 인기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걸 어떻게 푸는가가 가장 중요한거 아닌가?


나는 3년 동안 암흑과 옥황에게서 캐붕만 보았을 뿐, 거기서 개연성을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애초에 암흑만 봐도 공존이 가능한가 보이는데,

자기가 막장짓을 저질르면서 악임을 자각하고 있는 악이라면 상관 없다. 

하지만 자기가 막장짓을 저질르고 있긴 한데, 아무튼 자기는 피해자고 저놈들이 나쁜거다면서 도피하는 악은 재수없다.


차라리 순수 악이면서도 "그래, 나 나쁘다. 근데 나한테는 이게 정의다. 너희들이 뭐라 생각하든 상관 안해." 하면서 쿨하게 자기만의 가치관이 있다면 독자들 또한 그 악역을 다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고 저렇고 한 부분만 타협했다면 빛과 어둠의 공존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한다.


근데 지금의 암흑에게서 우리는 어느 곳을 타협했어야 했을까?


대충 암흑이 자기도 힘들었고 자기 나름대로 빛의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눈물 흘리며 사죄한 뒤에, 대충 옥황만 어떻게 한다면 다 해결되는 걸까?


옥황의 현재는 캐붕 그자체였다.

분명 그와 대지, 광명이 암흑을 왕따 시켰고, 그 점에 대해 암흑이 타락했다면 개연성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암흑이 타락한 이유는 자신의 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몸 되찾겠다고 온갖 학살과 식민지화를 자처했다.

만약 옥황이 최종보스로 쓰러졌다면, 광명계와 옥황계 사람들은 빛과 어둠의 공존을 외치며 암흑을 용서할까?


"빛과 어둠의 공존을 거부하는 선의 아집"은 마천 42권 이후의 주제가 되었지만 그것이 2부 시작부터의 주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이 모든 문제가 주제를 중간에서 바꿔버리면서 온갖 캐붕을 발생시켰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만약 2부 처음이었던 22권부터 이런 주제로 갔다면 이런 문제가 터졌을까? 아니다. 그랬으면 28권의 시간동안 잘 진행했을지도 모른다.

원래의 50권 완결을 생각하면 42권부터 주제를 바꾼다는 것의 뜻이 어떤건지 알 수 있다.

그렇다. 자살행위다. 어떤 작품도 끝이 다가오는데 갑자기 주제를 틀어버리지 않는다.



나로서는 이제 모르겠다...

내가 옳은건지... 저들이 옳은건지...


옥황상제에게 희생을 강요당할 뻔한 삼장이 그를 존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실제로 강요고 뭐고, 그냥 수만명의 영혼과 함께 삼장을 강제 희생시킨 암흑의 말은 곧이곧대로 믿는 것이 옳았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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